무지개전원교회

경남선교 120주년기념관

 

조셉 헨리데이비스 선교사




경남 선교를 위해

한 알의 밀알이 된

데이비스

Australian Missionary

Rev. JOSEPH HENRY DAVIES

1856. 8. 22 ~ 1890. 4. 5

호주 초대 선교사

조셉 헨리 데이비스(한국명 德 倍 時)

거룩한 순교, 한국에 왔던 최초의 호주 선교사 죠셉 헨리 데이비스 목사. 그는 한국 선교를 위하여 호주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한국 땅에 발을 내디뎠다. 호주의 모든 사역을 뒤로 한 채 40일간의 긴 항해를 거쳐 1889년 10월 2일 한국에 도착하였으나 6개월간의 사역을 끝으로 1890년 4월 5일, 33세 젊은 일기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음으로 한국 선교를 위한 한 알의 밀알이 되었다.

데이비스는 한때 인도 선교사였으나 건강이 좋지 못하여 22개월 만에 귀국하게 되었고 코필드 문법학교(Caufield Grammar School)를 설립하여 교장으로 일했다. 그는 다시 인도 선교사로 가려고 했으나 한국선교의 긴방성을 알리는 중국주제 영국성공회 선교단체인 씨 엠 에스(CMS) 소속인 월푸(John R. Wolfe) 주교의 편지를 읽고 한국선교를 자원하게 되었다. 성공회에 속해 있던 그는 학교 교장직을 버리고 장로교로 이적하였고 에딘버러의 뉴 칼리지(New college)에서 신학수업을 마친 후 1889년 8월 목사 안수를 받았다.

목사가 된 그는 빅토리아주 청년연합회(YMFU)의 파송을 받고 1889년 8월 21일 멜보른을 떠나 한국으로 향한 여행을 시작하였고 그해 10월 2일 이른 아침 부산항에 입항하였다. 10월 4일에는 서울에 도착하였고 서울서 5개월을 보낸 후 아직 선교사가 없는 지방으로 가서 일하기로 작정하고 1890년 3월 14일, 부산으로 향했다. 서울을 떠난 그가 수원, 과천 등 경기도 지방과 공주 등 충청도 지방을 거쳐 경상도 지방까지 300마일에 이르는 약 20일간의 답사여행을 마치고 목적지인 부산에 도착했을 때는 1890년 4월 4일 금요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무리한 도보 여행으로 인해 천연두에 감염되었고 폐렴까지 겹친 상태였다. 그리하여 부산에 도착한 다음 날인 1890년 4월 5일, 오후 1시경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가 한국에 온지 6개월, 그가 한국 땅을 밟은 지 183일째 되는 날이었다. 당시 부산에 체류했던 캐나다 선교사 게일(J. S. Gale)은 데이비스의 시신을 부산 복병산에 매장하였고, 그의 묘비에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 죽는 것도 유익하다 (To Live Christ To Die Gain)”라고 새겼다. 그의 죽음은 호주교회로 하여금 한국선교에 대한 관심을 한컷 고조케 하였고, 그로 인하여 부산, 경남 일대에 선교 사업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Rev. Joseph Henry Davies

조셉 헨리 데이비스(재한기간: 1889~1890, 한국명: 덕배시(德倍時), 파송기관: YMFU, 순직: 1890.4.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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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셉 헨리데이비스 선교사
  • 2010-12-22
  • 박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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