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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장문헌02 사민필지


나의 애장문헌. 박시영 목사편02. 사민필지(士民必知)

 

우리나라 교과서의 역사는 한 세기를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라의 최초의 교과서는 무엇일까? 학계에선 최초의 공립교육기관었던 육영공원에서 학습용 교재로 사용하였던 사민필지(士民必知) 근대 교재의 효시로 본다. 이 책은 미국인이면서 한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감리교회 출신의 헐버트 박사가 펴낸 것이다.

'사민필지'는 세계 정세와 각국의 풍습, 산업 등을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순 한글로 적었다. 서문에서 한글이라는 훌륭한 글자를 두고도 한자만 중시하던 당시 세태를 아쉬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헐버트는 1908년까지 모두 15권의 한글 교과서를 펴냈다. 배재학당에서 가르쳤던 주시경 선생과 함께 한글 연구를 하면서 우리 글에 '띄어쓰기''점찍기'를 도입하고, 고종에게 건의해 국문연구소를 만들도록 했다.

헐버트는 한국에서 23년간 선교사로 활동하며 한국 문화와 교육 및 외교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는 조선이 강대국들의 개방 요구에 몹시 혼란스럽던 고종 시대에 이 땅에 와서 한글발전과 조선 독립운동에 힘쓴 고마운 외국인이다. 한문만 쓰던 그 시대에 외국인이 우리 글로 교과서를 만들었다. 1892년에 한국소식이란 영문 잡지를 만들고 한글이 우수함을 여러 번 영문으로 피력했다. 1903년에는 미국 스미스소니언 협회가 미국 대통령과 의원들에게 보내는 연례보고서에 '훈민정음'이라는 영문 논문을 기고해 한글이 영어보다 대중 의사소통 매개체로 더욱 훌륭함을 세상에 알렸다. 1896년엔 서재필과 주시경을 도와서 최초 한글신문인 독립신문을 창간했고, 1907년엔 고종에게 지석영, 주시경들과 함께 최초 한글 연구 국가기관인 국문연구소를 만들도록 건의해 허락을 받았다. 오늘날 우리 한글로 말글살이를 할 수 있는 밑바탕을 만든 것이다.

헐버트는 사후 한국에 묻히기를 원해 마포 양화진외국인묘지공원에 그의 아들과 함께 잠들어 있다. 그의 묘비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다.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한다’.

 

 

 *'사민필지' 란?  선비나 백성들이 다 알아야 할 지식이라는 뜻이다.

 

 

 

 

<2013.1.13 기독교보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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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애장문헌02 사민필지
  • 2013-01-19
  • 박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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