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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영목사-내탓이요 네덕이라 기사화

  • jfirst2
  • 조회 : 1812
  • 2007.08.22 오전 11:06


기독교보 제804호(2007.8.18일자)에 박시영목사님의 설교문이 금주의 만나(제13면)에
기고되어 기사회되었다. 마태복음 5:38-39 말씀을 중심으로 우리 주님 예수께서 가르치신 우리의 권리에 대한 말씀이다. 원고지 분량이 제한적인 까닭에 요약에 요약을 한 것이기에
충분히 본문의 뜻을 전달하지 못했기에 아래에 원문을 기재하고자 한다.

내 탓이요, 네 덕이요!
마태복음 5:38-39


밀양마산교회 박시영 목사

   지금 우리는 인류역사상 그 어느 때 보다도 자신이 누려야할 권리를 철저히 의식하며 주장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크리스천들이 내가 누릴 수 있는 권리에 대해서 질문해 보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나에게는 성공할 권리가 있는가?’ ‘부자가 될 권리가 있는가?’ ‘명성을 가질 권리가 있는가?’ 꼭 이대로는 아니겠지만 많은 이들이 이와 비슷한 질문들을 해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권리가 있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크리스천으로서 여러분이 가진 권리는 어떤 것입니까?  또 그 권리를 여러분은 어떻게 행사하시렵니까?
신약성경 마태복음 5~7장에는 산상수훈 혹은 산상보훈으로 알져진 우리 예수님의 가르침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이중 마태복음 5장 20절부터 마지막 절까지는 우리 주님 예수께서 ‘너희는 이렇게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는 특별한 형식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5장 38~39절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내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예수님께서는 우리 크리스천들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이 권리의 사용에 대하여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가진 보복할 권리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복수심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심정입니다. 가령 여러분이 까닭없이 누군가에게서 구타를 당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아마도 억울함과 동시에 화가 치밀어 올라서 당장에라도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노는 것을 한번 지켜 보십시오. 한 아이가 어쩌다가 심한 놀림을 받든지, 또는 쥐어 박히게 되면 울면서라도 달려들어서 꼭 상대를 때릴려고 합니다. 그러기 전에는 좀처럼 울음을 그치려 하지도 않지요.  또 자기 힘으로 여의치 못할 때에는 울면서 자기 부모에게로 뛰어갑니다. 내 대신 복수를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는 한 대를 맞았는데 보복을 할 때는 두 대, 세 대 아니 그 이상 때리고 싶은 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복수심 속에는 언제나 내가 당한 그것보다도 더 많이 돌려주고 싶은 욕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작은 싸움이 큰 싸움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잘 아시는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구약성경 출애굽기 21장 23절과 25절에는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인 것은 데인 것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 지니라”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어떻게 들려지십니까? 
 이 출애굽기에 나오는 율법의 선언에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더 크게 보복하고자 하는 우리 인간의 복수심에 제동을 거시는 것입니다. 내가 한 대를 맞았으면 한 대 이상으로 복수를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눈에는 눈 이상으로, 이에는 이 이상으로 보복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의 말씀은 사실 ‘갚으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피해를 입은 이가 자신에게 피해를 입힌 이에게 정당한 권리 사용의 일환으로 가해(加害)를 할려고 할 때에 주어진 ‘책임’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 한계를 분명하게 설정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보다도 더 큰 의미가 바로 두 번째의 의미인데, 내가 가해자라고 한다면 피해자와  똑같은 입장에서 체험하며 느껴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남의 이를 부러뜨린 일이 있으면 그 순간에 나의 이도 부러져야 함을 생각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남의 이가 더 이상 남의 이로만 생각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남의 이를 부러뜨리는 그 순간 내 이도 부러져야 하기 때문에 남의 이는 곧 나의 이입니다. 이 정신이 바로 이 율법의 기초 정신입니다.
 ‘입장을 바꿔놓고 한번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의 이 보복하려는 마음에는 반드시 변화가 있게 될 것입니다. 결국은 ‘이는 이로 갚으라’고 하는 이 말은 표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신약에서 우리 주님 예수께서 ‘네 형제를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과 똑같은 의미입니다. 복수심이 생길 때에는 꼭 한번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아라’ 그러십니다. ‘그 사람의 마음과 아픔을 네가 먼저 한번 헤아려 보아라’. 남의 경우가 바로 나의 경우로, 남의 입장이 바로 나의 입장으로, 남의 이를 부러뜨리는 것이 바로 내 이가 부러지는 것으로 연결만 된다고 한다면 문제는 달라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 예수께서는 더 적극적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내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아예 ‘대적조차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출애굽기 21장 23절에서 25절의 말씀과 마태복음 5장 하반절에서 우리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대상은 서로 다릅니다. 출애굽기는 자신이 입은 피해에 대하여 정당한 권리 사용을 행할 수 있는 가해자(加害者)이지만 마태복음의 말씀을 듣고 있는 대상자는 피해자(被害者)입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편 뺨을 돌려대며 누가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가 주라’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의 대상자는 누구입니까? 뺨을 맞고 억지로 오리를 끌려가게 된 피해자인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것은 ‘사랑과 용서’입니다. 남이 나에게 잘못했을 때 사랑으로 용서하여 주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말씀대로 살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의 자리는 천국이 될 것입니다. 잘못한 사람은 출애굽기를 보고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려고 하고, 피해를 입은 사람은 마태복음을 보면서 잘못을 용서해 주려고 한다면 그 두 사람 사이에 어떠한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만일 두 사람이 그러한 일로 서로 다툰다면 그것은 천국의 다툼이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책임과 용서의 마음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시며 출애굽기와 마태복음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남에게 잘못을 하여 피해를 입혔을 때에는 출애굽기보다는 마태복음을 보면서 상대방에게 용서해 줄 것을 기대합니다.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피해를 입었을 때는 출애굽기를 보면서 이에는 이로, 눈에는 눈으로 갚으려고 달려듭니다. 용서해 주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성경을 그러한 식으로 읽고 인용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획하신 천국의 삶을 놓치고 살아갈 때가 많은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문제는 책임을 추궁하는 사람은 많으나 책임을 지려고 하는 사람은 적다고 하는데  있습니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은 많으나 자신의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자기가 잘못하면 책임지고 남이 잘못하면 용서해주는 삶은 세상적으로 보면 어리석은 일이요, 손해나는 삶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복음적인 삶입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내 탓이요 네 덕이라” 할 줄 아는 언제나 겸손한 자세를 갖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잘못했을 때 자기의 잘못과 실수를 인정하고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그러한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길 바라고 계십니다. 반면 남이 우리에게 어떤 실수나 잘못을 하였을 때에는 용서하며 너그럽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줄 수 있는 관용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합니다.

               2007. 8. 2 기독교보 원고 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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